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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북한산 22봉 종주, 16성문, 백운대

 

#백운대
#북한산22봉
#16성문

어느 분이 북한산 22봉을 노래해서 답사차원으로 다녀왔다. 덤으로 16성문까지.

(개요)
날 짜 : 2021.3.5
들머리 : 평창동 롯데아파트
날머리 : 불광동 대호아파트
거 리 : 33.4키로
시 간 : 10시간25분

(코스)
롯데아파트 - 형제봉 - 대성문 - 보국문 - 문필봉왕복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봉암문 - 백운봉(대) - 인수봉 전망대 - (구) 백운산장 - 영봉왕복 - 백운봉암문 - 북문 - 원효봉 - 북한산성탐방센터 - 식당(비빕밥) - 대서문 - 중성문 - 국녕사 - 가사당암문 - 의상봉왕복 - 의상능선 - 문수봉 - 대남문 - 문수사왕복 - 청수동암문 - 승가봉 - 사모바위 - 응봉 (왕복3km) - 비봉 - 향로봉 - 족두리봉 - 불광동 대호아파트

(후기)
1. 평창동에서 대성문(3.5km)까지는 큰 어려움없이 진행할 수있다
2. 대성문에서 칼바위 갈림길(1km)까지 곳곳에 언곳이 있다.
3. 칼바위 갈림길에서 문필봉(왕복 2km)구간 문필봉에서 칼바위 오름길이 기운좀 빠진다
4. 칼바위 갈림길에서 백운대(3.4km)까지 질퍽거리는 곳이 곳곳에 있지만 백운봉암문에서 백운대까지를 제외하고는 평이한 길이라 체력 비축할 수있다.
5. 백운대에서 인수봉 전망대, 119특수구조대, 하루재, 영봉(1.8km)구간 중 119특수구조대(백운산장)부터 인수암까지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영봉까지 왕복해야는데, 돌아올 때는 백운봉암문으로 ~
6. 백운봉암문에서 대동사입구(1km)까지 돌계단이라 무릎 조심 ㅎㅎ 눈은 없다
7. 상운사입구에서 북문지나 원효봉(0.4km)구간은 쉬면서 오를 수있다.
8. 원효봉에서 서암문지나 효자리(1.6km)구간도 돌계단이라 역시 무릎조심
9. 효자리에서 탐방센터 식당(0.6km)까지는 평지(질퍽거림)
10. 식당에서 대서문지나 중성문(2.5km)구간은 아스팔트및 콘크리트길 쉬움
11. 중성문에서 문수봉(3.9km) 의상능선. 어느 분은 설악산 공룡보다 힘들다고? 아니다. 공룡능선은 5.1km 봉우리가 18개이다.
12. 대남문거쳐 문수사를 다녀온다. 식수보충을 위해
13. 비봉능선은 크게 어렵지않다. 다만, 응봉 왕복에 철제난간 있는 곳 힘들고, 향로봉내려가는 0.2km구간 조심하면 된다.

산을 마주할 때
나는 코끝에 스치는
미풍에 미소 짓는다

또한,
침묵과 소란이 공존하고
화려함과 수수함이 공존하는 등로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에
나는 두손 모아 경배한다.
저 나무토막이 없었더라면
무너졌을 수도~~
형제봉이란 이름을 알 수있는 모습이다.
조망은 작은 형제봉에서 보이는 조망이 더 아름답다.
한번 미끄러짐
(엉덩이에 살이 많아서 이상무).
여기서
엉덩이
방댕이
궁댕이
옛날 할머니들께서 곧잘 부르시던
궁할 궁자 궁댕이♪
엄할 엄자 엉덩이♬
꽃다울 방자 방댕이♭

응달쪽은 여전히 얼어붙은 빙판이고~
사랑합니다1
사랑합니다2
사랑합니다3
대성문(大城門)은 초기의 이름은 대동문(大東門)이었다. 문루는 1990년대에 중수했으며, 2019년에 개축했다
1982년 학생들과 함께 대성문 야유회~
보국문(輔國門)은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이었다.
북한산성은 백제 개루왕 5년에 처음 쌓고 조선 숙종37년에 6개월만에 7,620보의 성을 쌓고 성내에 승병 육성을 위해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를 세웠다고 '숙종실록', '북한지'에 기록되어있다.
경칩이지만, 아직도 추운 날
솔향이 머금은 산길 속에서 등산의 맛을 탐구하는 나는 첫발에 편안함과 따스함이 발아래에 전해온다
칼바위는 국토지리정보원에 석가봉(釋迦峯) (598m)으로 기록되어 있다.
2020년 9월30일 칼바위 전구간을 데크계단으로 공사완료 했다.
문필봉이란 산세는 화산(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 이라는 뜻도 있고, 산봉우리 형태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봉우리와 같은 산의 기운이 선비의 지조를 갖게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통팔달 대동문 - 백운대방향, 대남문, 산성탐방센터, 아카데미하우스, 소귀천계곡, 진달래능선으로 하산할 수있는 등산의 요충지.
화장실도 있고, 시단봉과 일출봉으로 가는 길도 있다.
장대는 전쟁시 군사 지휘가 용이한 높은 곳에 돌로 쌓은 장군의 지휘소다. 남장대와 북장대는 소실된 채, 터만 남아있다. 반면에 동장대는 해발586m의 시단봉 위쪽에 1996년에 복원하였다.
북한산성 16성문 중에 수문2개는 1925년 수해로 유실되고 남아있는 14성문중 암문(暗門)은 7개인데, 巖(바위암)을 사용하는 곳은 용암문(龍巖門) 한 곳인데, 그 이유는 용암봉암문(龍巖峯暗門)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백은봉에 이르는 바위에 백팔번을 넘는 번뇌도 맛보게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밀려오는 감동에 주저앉아 격정에 휘말리게 된다
영취봉과 원효봉을 볼 때마다, 그 자태가 단아하고 꾸밈없고 수수함을 나는 알고있다.
위문이란 일제의 잔재. 따라서 우리는 원래의 이름 백운봉암문으로 불러야한다.
족도리바위를 넘는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산중에 있을 때면
꽃구름을 타고 마중나가는 새신랑인듯 하다
해발 50미터이건 1915미터이건 어느 산이던
그리움처럼, 고향의 맛처럼 나는 산행지 선택에 후회한 적이 없다.
3.1운동
스쳐 지나간 과거시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민족부흥, 독립만세운동이다.
대한민국 국토 어디에도 선조들의 피흘리지 않은 곳이 있으랴.

드림팀 전문 사진사 잡초님
지난 주 일요일 불수사도북하고 있는데
배낭에 중간보급을 하기위해 배낭에 20kg이 넘는 식량에도
담배꽁초, 비닐, 휴지, 과일껍질등을 청소하며 백운대에서 불광동까지~~
산사랑의 극치와 초절정 애국자 젊은이
반드시 이루어야할 통일
개성의 천마산, 개마고원, 박연폭포
장길산의 무대 구월산을 나는 가고 싶다~~
접니다1
산의 맛과 풍류가 나의 전신을 휘감고 있고
춘풍에 흩어지는 풀향기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
나는
이 등산이라는 소탈한 아름다움에
눈물이 난다
선조들이 이 아름다움을 지키느라
흘린 피가 산야에 적시고 냇물이 되어 강으로 흘러 바다에서 생명의 깊이가 있으니
또한 바다를 보면 황홀함이 내 몸을 휘감는다
북문의 아치구조 - 수직의 힘을 양쪽을 분산 시켜주는 직압력으로 바꾸어주는 인장력의 이론을 선조들은 물리학을 몇 천년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놀라울 뿐이다.
가운데 돌이 왜 밑으로 빠지지않나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왔다.
논란의 대상인 북한산인가, 삼각산인가?
"백제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수(강)주변을 한산이라고 하고 한강이북을 북한산, 한강이남을 남한산이라고 했다. 따라서, 북한산은 행정지명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삼각산을 양주 경계에 있는 있는데 화산이라고 했으며, 부아악이라고 했다.
또한,
고려 우왕 11년(1385) 무렵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749호인 산성내에 있는 태고사에 "원증국사탑비"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를 안치한 탑)에도 삼각산으로 기록되어있고,
"고려사", "북한지(1745-영조21)"에도 삼각산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산의 명칭은 한양을 포함해서 양주를 경계로 지금의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불수사도북, 앵봉산, 봉산을 경계로 하고 있는 지명 이름이다.
남한산은 고덕산, 일자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 호암산을 경계하고 하고 있는 행정지명이다.
접니다2
정신의 필수요소인 독서처럼, 등산(운동)도 삶의 필수적이다.
원효대에서 바라본 한북정맥상의 노고산
원래 한북정맥은 저곳이 아니다. 이어지지 않는다. 노고지맥이 옳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보현봉에서 형제봉, 북악산, 인왕산, 무악산(안산)에 맥을 다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의상봉 토끼바위에서 의상봉 가기전 평평한 바위를 의상대라고 한다.
서암문(시구문)이다. 16성문을 종주할 때, 여기서부터 수문지까지 갈 수없기 때문에(등산로 없음) 효자리방향이 아니라 아미타사(구 덕암사)방향으로 가서 수문지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 방향이다.
탐방센터에서 비빔밥을 들고 생수2통을 사서 대서문으로 출발
중성문에 3개의 문이 있다.
중성대문, 중성암문(시구문), 중성수문(1925년 홍수때 무너짐)
법용사에서 국녕사를 거쳐 가사당암문을 지나 의상봉까지 1.1km
삶의 철학, 등산의 교본인 잡초님과 박용우대장님, 그리고 산사랑 실천하는 분들은 등산이 철학이고, 종교라 할 수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언제인가 이곳에서 독서하고 있던 어느 분에 대해 감동받은 적이 있다.
나폴레옹은 달리는 말에서도 책을 놓지않아 생애 8,000권을 읽었던 사람으로 괴에테는 "항상 D장조같은 인물"이라는 찬사를 붙였고, 베에토벤은 영웅교향곡을 헌사했다.
물론, 후에 후회했지만~

이곳에 용철이 나옴 ㅎㅎ
용이 나오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용출봉(龍出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면 서풍에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들리는 듯하고
가슴깊게 전해오는 뜨거운 시 한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해맑은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산자락에 앉을 때면 내마음은 고요한 밤바다를 스치는 별빛같은 느낌이 든다
산앓이는 병이 아니다. 앓아도 좋은 증상이다
증취봉은 정상에 있는 바위 형상이 시루와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땔 취 字이니 시루에 불을 지피는 형상이다.
볼 때마다 경외스럽고, 감동을 주는 증취봉 명품 소나무
715봉(남장대터) 오름길에 바라본 나한봉(발굴조사 중이라 출입금지)
오묘한 문수봉에 오를 때면
가슴을 죄는 웅장함과 뜨거운 환상이 넘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흥분이 나타난다
문수보살(문수사)이름을 타서 붙여진 문수사.
미세먼지가 가득한 강북구, 노원구 너머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보인다
가야할 비봉능선이 오늘따라 까마득하다
오늘은 연화봉은 생략하고, 22봉과 16성문종주에 따라 대남문과 문수사를 다녀와서 청수동암문 애추지역으로~
23봉 종주할까 고민했지만, 보현봉은 생락. 비탐이라~
대남문(大南門)은 북한산성의 성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소남문(小南門)이었다. 현재의 문루는 복원된 것이다. 2020년에 재보수 완료.
문수사는 고려 예종 때 탄연에 의해 창건되었다. 오대산 상원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한국의 문수보살 3대 성지로 널리 알려졌고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는 나한도량으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사에는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법당은 영험이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도 그의 어머니가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까지 와,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에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통천문 : 하늘이 열리는 문이라고 하며 통천문위의 바위에 오르면 보현봉과 의상능선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승가사의 사찰 이름을 따서 붙여진 승가봉
승가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수태가 창건한 사찰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보물 제1000호로 지정된 석조승가대사상이 있으며, 서북방 100m 지점에는 보물 제215호로 지정된 거대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부각되어 있다. 
승가봉 명품 소나무
이 소나무를 보지않고 지나치면 절대로 안된다. 돈주고도 볼 수없는 고독한 소나무
점점 다가와지는 사모바위
사모바위에서 오른쪽 진관사/삼천사 방향으로 왕복 3km 응봉에 다녀와야한다.
원래는 사각형바위 또는 사모관대를 닮아서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연인끼리 "사모(思慕)하다"는 의미의 사모바위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청나라에 끌려간 여인을 이곳에 그리워하다가
바위가 되었다한다. 또한 바위는 양쪽 어깨에 견장을 올린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여 다른 이름으로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응봉가는길에 담아본 의상능선과 백운대학교. 전국의 대학들이 정원미달사태인데, 백운대학교는 항상 정원초과
여기서 족두리봉은 왼쪽으로
얼마전까지 마사토 미끄러웠는데, 지금은 계단으로~
오른쪽은 황룡봉거쳐 불광사 또는 선림사(문재인 대통령이 공부해서 사법고시 합격했던 사찰)방향
향로봉 우회길에서 뒤돌아본 비봉
족두리봉이 보이고
뒤돌아본 향로봉
족두리봉에서 해넘이를 보고갈까 고민중
족두리봉에서 정진사로 갈까 대호아파트로 갈까 고민중
김상진의 이리 갈까♬ 저리갈까♭
족두리봉(수리봉)
이곳에서 대호아파트까지 약 1.2km
가파른 바위길이 많다

다왔다.
언제부터부터인가 등산인들 사이에 대호아파트는 크나큰 이정표로 인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