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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영남알프스 8봉, 낙동정맥 (고헌산)

'영남알프스8봉, 고헌산서봉1035m, 고헌산1034m'

미스서울 출신의 묘령의 선녀분을 만나 감동입니다. 만나뵈서 반가웠습니다.

(개요)
날 짜 : 2023.2.25
들머리 : 와항마을 정상휴게소
날머리 : 원점회귀
거 리 : 6km
시 간 : 1시간 28분

(코스)
정상휴게소 - 소호로 - 신와항재(新瓦巷岾)
- 고헌산 서봉 - 고헌산 - 원점회귀

(후기)
1. 와항마을의 정상휴게소는 휴게소 뒷집이 운영했던 휴게소다.

2. 화장실이 없다. 식당 화장실 이용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
1. 와항마을을 어떤 분들은 외항마을라고 부르는데, 와항마을이 맞다

2. 와항마을이란 옛날에 이곳이 기와를 굽는 거리라서 와항(瓦巷)이라고 한다

3. 고헌산의 옛 이름은 고언산, 고언뫼로,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4. 고헌산 서봉(1035m)가 고헌산 동봉(1034m)보다 1m미터 높은데 왜 동봉이 주봉인가. 주봉의 개념은 높고 낮음을 떠나 지리적, 공간적, 정치적인 면에 따라서 편의적으로 불리워질 뿐, 큰 의미는 없다.
고헌산 서봉은 경주시
고헌산은 울주군
따라서 영알 9봉 (영알 8봉)은 당연히 동봉을 주봉으로.

만약 경주 알프스를 시행한다면, 서봉이 주봉이 된다. ㅎㅎ

(등산로)
1. 와항마을 정상휴게소에서 소호로를 따라 약 0.6km를 도로를 따라가면 간이 주차장이 보이고 오른쪽에 "고헌산 안내도"방향으로 오른다.

2. 흙길을 따라 조금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숨가쁘게 오르면, 질퍽거리는 흙길, 돌계단을 가파르게 오르면 넓은 민둥산 또는 패러글라이딩장 같은 넓은 조망터를 지나면 서봉(2.6km지점)이 나오고, 서봉에서 약 0.4km 완만한 폐침목(나무깔판)길을 따라간다.

3. 단석산까지 보이고, 배운산, 가지산, 문복산, 간월산 등등 주위의 산군들이 환상적으로 보인다.

미스 서울 출신의 미모의 선녀분

"메아리"

산마루에 흐르는
고운 눈빛은

영롱한 새벽이슬이 되어
온몸을 휘감은 천년을 넘고

수선화같은 그리움은
매화꽃에 걸린 낮달이라

코끝에 흐르는 봄빛에
산을 오르는 발걸음도 가벼워

반향이 닿는 곳곳에
하늘 축복이 흐르리라

옛날 낙동정맥을 하던 때 식사를 하고 갔던 정상휴게소
2019년에 왔을 때도 영업안하더라는~~
낙동정맥길은 고헌산들머리에서 좌측으로 올라서 와항재(新瓦巷岾)거쳐 와항마을로 하산해서 신원봉으로 올라 상운산, 쌀바위, 가지산으로 진행한다.

신와항재에 있는 안내도를 따라 고헌산으로 오른다.
이곳이 들머리
왼쪽은 낙동정맥 남진길
이런 계단도 지나고
이런 길도 지나며
조심 조심
자빠질라
고헌산 서봉을 보니 산우님들이 많다.

그래서 고헌산을 먼저~
(접니다1)
일단 고헌산을 찾아뵙고
여유를 갖자.
의도하지 않게 경치에 취해 촬영 삼매경에 빠진 어느 낭자의 모습도 찍혔다.
아름다운 우리의 산야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고 주저앉아 울었듯이
나는 미세먼지 드리워져 흐릿한 영남알프스의 하늘을 보고서야 나는 알았다.
선조들의 피와 눈물이 베어있는 소중한 이 땅의 아름다움이라는 붉은 핏물이 흘렀다는 것을~
아름다움은 창조할 수 없으며 단지 모방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최고의 고귀함이라는 것도.
산속에 생명이 있고 진리도 있다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집중해서 쌓은 작은 돌탑일지언정
몰입의 기쁨은 순수한 마음, 빈 마음, 무소유의 기쁨이다.
(동봉방향에서 서봉의 모습)
법정스님의 "무소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은 경제학적인 측면이고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하나를 가지면 하나의 근심이 있고, 백개를 가지면 백가지 근심이 생긴다고 한다.
접니다1
월계 허경님과 함께
백석은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자야'를 취해서 기생 김영한을 "자야"라고 부른다. 나타샤로 부르기도 했다.
.
김영한은 1955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한정식당을 열게된다
대원각은 1970년, 80년에 서울의 대표적 요정이며 군사독재시절 권력층과 부유층이
많이 드나들던 장소로 김영한은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큰돈을 모은다
그러던중 김영환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대원각을 불사로 시주하기로 결심하고 법정스님과 10년간 권유와 거절을 거듭한 끝에 법정스님은 시주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마침내 1997년 길상사라는
절로 거듭나게 된다
당시 대원각의 자산가치는 1천억대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영한은 감동적인 말을 남기게 된다
"내가 시주한 천억대의 돈은 백석의 시 한줄 만도 못하다."
산에 들어가면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
정신적 무소유 상태
근심 걱정 모두 내려 놓는다
낙동정맥 갈림길 신원봉, 학대산, 문복산, 대부산 마루금이 환상적이다
낙동정맥의 상운산과 가지산이 멋드러진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고산자 김정호는 짚신을 신고 그 높은 산들을 올랐을까
(오늘 계획은 와항재에서 고헌산, 그리고 저기 보이는 백운산 지나 단석산까지 20km를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행들과 점심상을 차려드리기로 약속을 ㅋㅋ)
고산자(높은 산을 사랑하는 자, 가야할 높은 산이 아직도 많은 자, 높은 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자) 김정호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겨울산에 들어갔다 사망하게되어 누구나 볼수있는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목표가 있으면 몰입하게 된다.
고헌산의 옛 이름은 높은뫼, 높뫼, 높은산, 고언뫼, 고언산, 고헌산으로 변화되었다.

(저 앞은 오래 전에 낙동정맥할 때 다녀왔던 불송골봉726.8m)
옛 이름을 찾아야한다.
아름답고 예쁜 우리의 뫼이름들로 되돌려야 하는데,
언제부터 고유의 말들을 한자로 바뀌었을까
학자들은 통일신라 초기와 고려 사대주의 사상이 만연했던 시절부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많은 이름들이 한자로 바뀌었다
어이할꼬 ㅜㅜ
지금도 한자가 아니면 큰일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한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일본이 한자를 알면 뜻을 이해할 수있는 문구나 문장들 많기는 하다
나도 어린 시절에 조부님으로 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을 배우기도 했지만.
까끈산, 새벽대기산, 두개비산, 달머리봉, 꼬깔봉, 송곳산, 소나무봉, 뒷삐알산, 큰들산, 촛대봉, 까치산, 드름산, 까치산, 삼태봉, 등등 예쁜 우리말에 정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