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
(최용철, 익염공, 소금빛향기)
이상과 꿈, 그리고 현실사이에 방황하던 학생들의 고뇌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시절이었던 70년대 후반에 <일간스포츠>에 연재되던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에 처음 접하던 나는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조국의 뼈아픈 슬픔으로 내일 날짜의< 일간 스포츠>를 기다리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키우며 지내왔던 그 5년 6개월의 자각의 시간이 나에게는 고통과 환희를 느껴왔던, 나의 청춘의 기초를 닦았던 시간이었다. <여명의 눈동자>를 계기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취미를 바탕으로 대하역사소설이면 거의 읽어왔다. <여명의 눈동자>로 하여 나의 역사관이 변하고, 나의 인생관이 변하고, 나의 삶의 철학이 변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에 읽었던 <여명의 눈동자>를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번 기회에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었음은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외교위원회에 상정할 시점에서 일본의 과거의 죄악을 뉘우치기는커녕 미국의 주요일간신문에 종군위안부들에 대한 강제성이 없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게재하는 작태를 보고 나의 정신자세를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또한, 북핵문제로 동아시아의 정세가 미묘하게 진행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1943년을 시작으로 한국전쟁이 끝나갈 시점까지의 민족의 비극과 슬픔을 거의 사실적으로 그려진 대하소설로 성격이 각기 다른 장하림, 최대치, 윤여옥을 중심으로 애증의 소설이다. 세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일제의 희생자들로 최대치는 중국의 유학생으로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17세의 윤여옥도 강제적인 종군위안부(이 책에서는 공동변소로 묘사)로 끌려오고, 일본의 동경제대 의학도인 장하림도 역시 학도병출신으로 중국전선으로 끌려갔다.
1943년이 저물어가는 겨울, 종군위안부로 중국전선으로 끌려가서 수많은 일본군의 공동변소로 전락한 윤여옥앞에 나타난 학도병 최대치. 그는 윤여옥과의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윤여옥은 최대치의 아이를 가짐으로써 삶의 희망을 갖게된다. 윤여옥은 임신한 몸으로 사이판으로 끌려오고 장하림도 중국전선에서 사이판으로 끌려옴으로써 윤여옥과 장하림은 운명적인 만남, 장하림이 윤여옥의 아이를 받아냄으로써 윤여옥과 아들 최대운에 대한 애착, 그곳에서 장하림의 세균전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게 알림으로써 뒤바뀐 하림의 운명, OSS팀원으로 장하림과 윤여옥은 조국에 침투되고 수많은 체포와 고문을 통해 불사신처럼 살아났다. 최대치는 중국전선에서 미얀마전선으로 투입되고 영국군에 의해 괴멸된 일본부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나고 중국공산당에 들어감으로써 그의 운명은 철저하게 혁명운동으로 변하게 된다. 애국지사를 저격하고 윤여옥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 팔로군에 몸담은 전력으로 북한공산당의 장교로 복귀한 그는 잔인하고 냉혹한 혁명전사가 되어 해방후의 남한에서 전개된 폭력투쟁(제주도폭동, 여순반란사건, 지리산 빨치산)을 전개한 배후조종자로 끊임없이 장하림과 윤여옥을 괴롭힘으로써 두 사람의 운명을 슬픔으로 몰고 가게 된다. 아내 윤여옥을 통해 미군의 정보를 빼냄으로써 한국전쟁의 비극의 씨앗이 되게했던 공산당 일급 스파이로 성장한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한 그녀는 결국에는 남편인 북한군대좌 최대치의 총에 지리산에 피를 흘리며 조국의 빨치산의 생명이었던 곳에서 쓰러져갔다.
세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장면은 미래의 조국반도가 분단되는 것을 상징하는 복선이 아닐까. 이 책의 제목도 <여명의 눈동자>이지만 여명이란 새벽이 밝아옴을 뜻하기 때문에 조국의 희망을 뜻하는데 윤여옥의 암호명 또한 <여명의 눈동자>인데 지리산 속에 남편 최대치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것은 조국의 희망이 또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끝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는지.
당시의 이승만정권에서 남북의 무기와 전력차이가 북한이 월등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북으로 밀고 갈 수 있다는 발언, 신의주까지 밀고 간다는 연설등, 공공연한 북침의 발언으로 후에 북한의 북침주장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허무맹랑한 정치활동, 의정부까지 소련제탱크를 밀고 내려오고 있는데도 별일없으니 생업에 종사하라고 하는 라디오방송, 서울이 함락되기 몇 시간 전에 이승만은 대전으로 피난(도망)가고 한강다리를 끊어버려 국민들은 피난조차 가지 못하고 죽어갔던 우리들의 형제자매들. 공산당의 비 협조적이었던 피난가지 못한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낫, 죽창, 삽으로 맞아죽어 갔다. 북한군에 당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또한, 서울 수복후에 우리들의 젊은이들에게 보도연맹에 협조했다는 미명하에 죽임을 당했다(이 장면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나옴). 우리들의 정치인들은 이렇게 국민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필요했었는가? 나라를 잃는 비극은 말로 표현 할 수 었다. 백제의 멸망, 고구려의 멸망, 조선의 멸망과 함께 이 땅에 뿌려진 피의 씨앗이 어떠했는지. 그런데 한 핏줄의 동포들과의 이념대립으로 벌어진 피의 총칼. 이제는 우리들의 나라를, 우리들의 사람들을, 우리들의 후손들을 위해 뭉쳐야 하지 않을까. 저 찬란한 아시아의 등불이 타오르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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