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최용철, 익염공, 소금빛향기)
“불휘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뮐새 곶됴코 여름하나니 새미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그츨쌔 내히이러 바라래 가나니”
<훈민정음언해>를 시험에 나온다고 강조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달달 외웠던 그 기억이 가물해지는 옛날의 일이 되어 버릴 쯤, 소설로 등장한 <뿌리깊은 나무>를 읽고 야릇한 흥분과 전율을 느꼈다. 이정명님의 <천년후에>를 읽고 난 후에 시공을 초월한 소설기법에 적잖은 감동을 느꼈던 나로서는 <뿌리깊은 나무>도 셜록홈즈의 추리소설처럼 단순한 흥미 위주의 소설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생각은 조선왕조 500년의 왕실의 근처에 조차 근접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짓밟혔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미묘한 살인 사건을 둘러싼 역사추리소설로써 한 작품의 잉태에는 그만큼의 고난과 힘겨움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28명의 집현전학사에 부여된 28자의 한글의 상징적인 의미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모태이리라. 양녕대군의 폐세자로 인하여 세자로 책봉된 충령대군은 세자시절에 대국 명나라로부터 모든 문물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고군통서’를 편찬한다. 그러나 고군통서를 둘러싼 20여년 전의 살육의 옥사를 겪은 후에 어린 겸사복 채윤에게 맡겨진 집현전학사의 연속된 살인사건 수사는 마방진과 수목금토의 기행에 따른 순차적인 살인사건에 뛰어든 채윤의 용감함, 무모함, 재치와 순발력으로 이어지는 수사는 거대한 벽에 부딪친다. 부제학 심종수의 간계로 세종대왕, 무수리 소이, 대제학 최만리, 및 겸사복 채윤에 이르기까지 엄청남 시련을 겪게 되지만, 모든 일에는 事必歸正, 채윤과 성삼문의 재치로 누명이 벗겨진다. 대제학 최만리는 변화를 싫어하는 정학(성리학)을 벗어난 기술학은 이단으로 간주하는 공공연한 발언으로 누명을 쓰지만, 겸사복 채윤은 처음부터 최만리의 소행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고 빈틈없는 수사를 진행해왔다.
당시의 모화사상은 지금도 만연하고 있다. 대국에 대한 비굴한 저자세를 취하는 위정자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저주하는 사람들,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대사관 등등, 수 천년을 이어온 사대사상은 사라질 줄 모르니...
1443년 한글 창제와 1446년 한글 반포라는 사실과 훈민정음해례(언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는 우리 후손들은 한글을 자랑스럽고 보물처럼 여겨야한다. 소설이라 하지만 한글 창제를 둘러싼 대국의 간섭이 상당했으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바, 한글창제에 그만큼의 희생과 고난이 따랐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가 이 책을 집필 할 때 각고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점을 알 수 있다. 漢字는 귀족 중신언어이므로 세종대왕께서는 가난하고 불쌍한 서민들에게 글을 깨우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소설의 모티브로 전 2권의 이 소설을 전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궁궐에서의 살인 사건은 중대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겸사복에게 수사를 맡긴 것도, 벙어리를 궁궐에 들일 수 없다는 반대에도 무수리 소이을 등장시킨 것도 서민인 장영실을 통해 온갖 과학기구를 만든 것도, 반인 가리온을 등장시킨 것도, 한글은 일반의 것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만주대륙의 숫한 전투에서 살아났던 겸사복을 등장시킨 것도 명나라에 도전하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에게 충성하는 정인지, 신숙주는 대왕의 사랑을 흠뻑 받으면서 훗날 문종의 아들 단종을 충성으로 보살펴달라는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의 피끓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의 선봉자가 되어 단종을 죽이는 만고의 죄인이 되어 부귀의 노리개가 되는 슬픈 역사를 장식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법,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다만, 구전을 통해, 야사를 통해 그 흐름을 전할 뿐이다. 창조의 고통은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나오는 것이다. 요즘처럼 불온한 시대에, 어둠의 시대에, 혼돈의 시대에 필요한 선각자들은 이디에 있는가? 다만, 작가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보인다는데...대제학 최만리에 의해 대호군 장영실이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을 만들었으리라. 그 이름 인라인스키이트이라고...
그렇다, 창작은 어둠을 똟고, 아픔을 견디고 나오는 법, 인라인스케이팅의 멋드러진 주법을 창조해보자, 고난의 역사를 겪을 지라도...나에게는 극복되지 않은 고난은 없기에...
나에게 한글을 다시 깨닫게 해주신 이 책을 보내주신 그 분께 끝도 없는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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