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슬픔은 잊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한반도의 백의민족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1,00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외침. 고조선의 한사군의 설치, 백제의 멸망, 고구려의 멸망, 발해의 거란에 의한 멸망등, 우리들의 땅, 우리들의 숨쉬는 곳, 한반도는 대륙과 섬사이에 낀 지정학적인 위치에 놓여진 우리의 조국, 사계절이 뚜렷하고 물좋고 경치좋고 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반도의 나라 코리아. 그러나 작은 인구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이민족들에 핍박받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위정자들과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외적에 대항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는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이다. 또 다른 정묘호란, 병자호란, 인진왜란, 을사조약, 경술국치가 일어나지 않는 보장은 없다.
후금은 국호를 청이라 고치고 형제지의를 군신지의로 요구하면서 엄청난 조공의 요구에 감당키 어려워하던 인조시대는 강병을 부르짖던 시간이 흐르고 청의 사신을 억류하면서 발단이 된 청의 침략은 왕족과 황후는 강화도로 인조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슬픈 역사로 시작되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단기간의 피난처로 알맞은 곳이지만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인조시대의 항전의 성으로는 부족한 것은 역사를 알고 역사를 배우는 초등학교 학생들 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추운 겨울에 식량은 바닥나고 싸울 수 있는 총은 총열이 휘어지고 얼듯한 추위에 화약이 당겨지지 않는 남한산성의 현실에 청의 무기는 당시로써는 가공할 정도였다. 당시 대포(홍이포)를 쏘아대는 엄청난 차이에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하였으리라. 청태종과 청군대장 용골대는 느긋하게 산아래에서 식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며 조선인들에 대한 사냥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역사는 돌이킬 수 는 없지만 병자호란을 예상하고 철저히 준비했던들 -수나라에 대한 고구려의 준비처럼-처절한 비극은 없었으리라. 극도의 굶주림과 공포속에서 밀려오는 죽음에 대한 슬픔과 조국의 비애를 사전에 준비했었더라면. 아! 우리들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지치다 못해 쓰러지며 항복의 예를 올리던 우리들의 임금 인조는 꽁꽁 얼어버린 삼전도의 논바닥에서 三拜九顧頭禮(삼배구고두례) - 큰절 한 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림을 3번 반복 - 의 치욕의 의식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비극적으로 탄생한 말, 화냥년. 우리들은 이말의 의미를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청나라에 끌려간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조선과 청의 협상으로 돌아온 여자들(環鄕女)에서 비롯된 슬픈 단어가 되었다.
나는 외적의 침입에 죽어 뼈가 백골이 될지라도 싸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병자호란때 상황은 그렇지를 못하다. 백성이 시들어가고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처절하리 만큼 청의 전리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단 한사람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지만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지방의 병사들이 단합하여 청국과 대전하거나, 조선의 잔다르크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청나라는 수나라와 같은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 법,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준비와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단결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리라.
청나라의 심양으로 끌려간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이들은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항전하자고 주장했던 고귀한 뜻을 가진 우리들의 모범된 공직자들이다. 윤집과 오달제는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뵐 수 없을 정도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지만 자발적으로 심양으로 끌려가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그곳에서 처형당한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늦었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해 조촐하지만 한잔의 술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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