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등산

블랙야크 100대 명산 (오봉산)

'블랙야크 100대 명산, 오봉산779m, 청평사, 노루귀, 소양강처녀, 김민기 상록수, 당나라 공주'

(개 요)
일 시 : 2016. 4.19
목 적 : 1984년 야학학생들 데리고 청평사로 수학여행 갔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들머리 : 오봉산 주차장
날머리 : 주차장 원점회귀
거 리 : 왕복 약 6.6키로
시 간 : 약 3시간57분

(코 스)
오봉산 주차장 - 망부석 - 홈통바위(해산굴) - 오봉산 - 홈통바위 - 천단 - 칼바위 - 청평사 - 구성폭포 - 거북바위 - 공주와 상사뱀 - 주차장

(등산로)
처음부터 정상까지 그리고 청평사까지 계속 암릉구간.

해산굴에 낑겨 헬기 호출할 뻔

(느 낌)
약32년만에 찾은 청평사의 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고 오봉산은 잘 정비되어 맛깔나는 산행이었다.

소요대에서 시조 한 수 읊고 왔어야 했는데 오후 근무 때문에 서둘러 하산했다.

참고로, 오늘 오봉산에 이쁜 여성분들이 엄청나서 가는 곳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

오봉산에 자주 가야 따다.
물론, 번호도 따였습니다. 여러번~~ ㅎㅎ

아기 자기하고 무지막지한 바위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바위틈 사이 사이로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소나무
그래서 선조들은 소나무를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왔나 보다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
겸재 정선은 소나무를 숭배하듯이
그렸나보다
바위 틈사이에 고고하게 견디는 소나무에
나는 경의를 표한다
옛 선인들은 바위보다 소나무를 사랑했다
생명력없는 바위보다
강인한 생명력, 우아한 자태에 넋조차 잃었으리라
이 소나무
실화인가
청평사를 에두르고 있는 소나무들
그래서 청평사는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겠지
1984년 저기 배를 타고 큰별야학생들을 데리고 수학 여행을 왔었다
애국가에도 '남산위에 저 소나무~~'
여기 저기 소나무의 푸르름에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저렇듯 절개가 있을까
큰별야학의 교가 김민기의 '상록수'였다.
상록수에도 역시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 함께 하리라 함께 손잡으리라
거칠은 들판에 푸르른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이기리라 
학생들 데리고 수학여행중 배에서
자고 났더니 애들이 장난을 ㅋㅋ
저 때만 해도 싱그러웠네 ㅋㅋ

뭐시다냐
ㅎㅎ
이곳에서 독한 술에
시 한수 읇고 가야 하는데
접니다1
 
웅장한 소나무
해산굴 통과하느라 애낳아야 하는데
애먹었네
아이고 낑겨서 ㄱ고생
여기도
나로호 같다는
접니다2
오봉산은 솔산이라 불러야 할듯
여기 저기 눈길을 끄는 소나무가 수두룩
내려가야 할 길이 까막득하다
온통 암릉투성이
드디어 내꺼를 찾으러 왔다.
소양강 처녀 노래가 생각난다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호가 작곡한 대한민국의 가요.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앨범 10만 장 판매액을 올렸다.

처음에는 제목을 춘천 처녀라고 하려 했으나, 어감이 더 괜찮은 소양강 처녀라고 지었다고 한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접니다3
973년(광종 24)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하여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다.
엣이름은 문수사, 경운사이었다가 이 산이름을 따사 청평사라 고쳤다.
이 산의 옛이름의 흔적이 마적산에산에 올라오다 보면 문수봉, 경운산이 있고, 또한 이 산이 청평사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그 뒤 폐사가 되었다가 1068년(문종 22) 이의(李顗)가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으며, 1089년(선종 6)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보물 제164호로 청평사회전문이 있다.
아니다
이제 보물 춘천 청평사 회전문이라고 해야한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로 인하여 청평사가 크게 흥했다
당나라 때 태종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당시의 법도에 어긋나게도 평민 청년과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이 격노하여 청년을 사형에 처했다. 청년의 원혼은 뱀이 되어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았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의 화신이라 해도 흉물스러운 뱀의 모습에 놀라 의원들을 불러 온갖 시술을 해보았지만 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 갔다.
영험있는 사찰에서 기도를 드려보라는 고려에서 온 노승의 권유에 따라 공주는 유명 사찰을 순례하다가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도착한 공주는 구송폭포 아래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계곡에서 범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법당을 찾아 가 기도를 올리고 옆의 폭포에서 몸을 씻는데 뱀이 스르르 풀렸다. 물 속에 비친 공주의 그림자를 실물로 안 것이다. 뱀이 회전문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갔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종은 기뻐하며 금 세 덩이를 보내 법당 건물을 세우게 하고, 하나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나머지는 후일 건물을 고칠 때 쓰라고 이곳 오봉산에 묻어 두었다고 한다. 공주는 3층 석탑을 쌓아 총각의 영혼을 위로했다. 바위에 앉은 공주의 손에 올려 놓은 뱀의 형상이 있다. 
청평사 노루귀 낭자1
청평사 노루귀 낭자2
메밀전병이라고 했던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