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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강기맥 (소구니산, 유명산, 마유산, 대부산, 용문산,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 두리봉)

#소구니산800m
#유명산862m
#대부산740m
#용문산1157m
#장군봉1065m
#함왕봉959m
#백운봉937m
#두리봉547m

(개요)
날 짜 : 2019.9.24
들머리 : 농다치고개
날머리 : 양평역
거 리 : 24.3키로
시 간 : 8시간 19분

(코스)
롱다치고개 - 소구니산 - 유명산 - 대부산왕복(1키로) - 배너미고개 - 용문산 가섭봉왕복(2.2키로) - 장군봉 - 함왕봉 - 백운봉 - 두리봉 - 휴양림 - 양평역

(후기)
오늘 "아름다운 산행방" 식구들이 유명산 ~ 용문산 연계산행인데..
늦잠을 자서 포기할까 하다가,,,
부랴 부랴...
전철 2번 환승하고 아신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농다치로...
산행하러 가면서 택시타고 가는 일은 생전 처음이다..ㅎㅎ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을 들러 유명산으로.....
유명산에서 대부산으로...
다시 배너미고개로...
다행히도 베너미고개 1키로 지점에서 일행을 만났다..

진수성찬 식사도 하고 용문산으로...
장군봉을 지나 백운봉과 두리봉으로...
휴양림으로 하산했다.

(등로상태)
1. 아신역에서 8시40분경 6-6번 문호리행 탑승후 농다치고개 하차

2ㅡ.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까지(약 1.8키로) 낙엽이 많은 계속 오르막.

3. 소구니산에서 유명산까지(약 1.2키로) 소구니산에서 50여미터 급내리막을 제외하고 완만하게 오르막

4. 유명산에서 다시 약 100미터 돌아와서 계속 임도 따라감.

5. 전체 약 4.6키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등로 있지만 이정표는 없음. 대부산 왕복 1키로 (대부산 정상부분만 급오르막)

6. 배너미고개까지 임도따라감.

7. 배너미고개 차단기 넘어 오른쪽으로 5미터 가면 왼쪽 등산로 보임.

8. 배너미고개에서 약 2.8키로 완만하게 오르면 군용도로 나옴 이정표 보임

9. 군용도로에서 군부대우회해서 용문산 정상까지 약1.6키로

10. 정상에서 돌아와서 장군봉지나 백운봉까지 약3.3키로 빡씨지는 않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11. 백운봉은 동양의 마테호른이라고 조망도 끝내주고 바람도 끝내준다.

12. 하산길은 용문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두리봉을 거쳐가도 되고 바로 하산해도 된다

13. 백안3리 마을회관에서 10-7, 1-7버스 양평터미널하차후 양평역까지 도보 이동

14. 양평역에서 백운봉만 산행할 경우 (백안3리, 세숙골, 세수골행) 7시50분, 12시, 17시40분 탑승, 돌아올 경우 (백안3리 마을회관) 8시, 12시10분, 17시50분 탑승

15. 우리는 양평역까지 계속 걸어감

농다치고개 들머리

농다고개 쉼터
농다치고개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양평군 마을 향리가 고개 넘어 가평군으로 딸을 시집보내게 되어 혼수로 장롱을 만들어 머슴인 돌쇠아비와 돌쇠에게 들려 보냈다. 아씨를 짝사랑하던 돌쇠는 고개를 오르며, 짝사랑 해온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분풀이인지 지고 가던 농을 바위에 부딪치며 걸었다. 뒤따르던 돌쇠아비가 “얘야, 농 다친다! 농 다친다!”라고 주의를 준 것이 농다치고개라는 지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쓰인다고 한다.
한강기맥 유명산 용문산구간을 몇 번을 지나가는 줄 모르겠다...

소구니산 - 옛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소쿠리이고 아낙들이 올라 나물, 버섯을 캔 산이라 소구니산
접니다1
유명산오르기 전에 담아본 용문산과 백운봉
유명산 : 원래 말이 뛰노는 산, 마유산인데, 1973년 여자 산악인 진유명이 올라서 붙인 이름이다.
접니다2
봉미산은 섬이 되었다..
운해에 갇혔다
환상적인 운해
대부산너머 운해
멀리 양평 청계산이 보이고
중미산
한강기맥
옥산 말머리봉 청계산 구간
패러글라이딩을 보니
사랑하는 "유리"가 생각난다
30년 동안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유리"
지금 거제에 살고 있다.
며칠 전에도 통화했다..
용철형 보고싶다고..
유리는 남자다.
용문산 전경이 멋지다
억새도 멋들어지고
Fly to the sky
제가 소나무를 왜 찍었을까요?
아시는 분?
활공장 아래에서 본 억새밭
개쑥부쟁이

"쑥부쟁이"

시/소금빛향기

쑥바구니 머리에
대장장이 맏딸 가득한 봄내음

가난한 날의 씨앗
님 기다리다 지쳐 쓰러진 날

그렇게 피어난 한송이 산국화 외로운 몸부림에 눈물조차 말라

나는 전설찾아 백리를 돌고 돌아 향기앞에 서서

지나가는 구름과 바람을 불러 권영초를 외치게 하리라
----------------
쑥부쟁이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 전설에 유래되었다.
싹이 돋아날 때 자주색을 띠어 자채(紫菜)라 하고, 약재명은 산백국(山白菊)이며, 권영초라는 이름도 있다.

쑥부쟁이 종류에는 쑥부쟁이를 비롯하여 멸종위기 한국고유식물(2급) 단양쑥부쟁이등 10여종이 있다.

이밖에 미국쑥부쟁이는 생태계교란 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쑥부쟁이꽃의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간난한
대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항상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이 대장장이의 큰 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이나
산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열심히 캐왔습니다.
이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이라는 뜻의 쑥부쟁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 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습니다.
노루는 고마워하며 언젠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그 날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쑥부쟁이는 재빨리 칡덩굴을 잘라서
사냥꾼을 구해 주었습니다.
쑥부쟁이가 목숨을 구해 준 사냥꾼은
자신이 서울 박재상의 아들이라고 말한 뒤, 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쑥부쟁이는 그 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쑥부쟁이는 사냥꾼과 만났던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나나타지 않았습니다.
쑥부쟁이는 더욱 가슴이 탔습니다.
애타는 기다림 속에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끝내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해 갔습니다.
그동안 쑥부쟁이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더 생겼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습니다.
어느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정하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정성스레 떠 놓고 산신령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준 노루가 나타났습니다.
노루는 쑥부쟁이에게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랏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뤄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노루는 곧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병이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완쾌되었습니다.
그 해 가을, 쑥부쟁이는 다시 산에 올라
사냥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역시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주머니를 생각하고, 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둘이나 둔 처지였습니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쑥부쟁이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저이에게는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세월은 자꾸 지나갔으나 쑥부쟁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동생들을 보살피며 항상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며 나물을 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에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나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은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집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나물이라 불렀다.
나쁜 청년 ㅠㅠ
최용철은 아님
대부산 왕복 1키로
계속 직진하면 편전산이 나온다
접니다3
왕복하고 뒤돌아서 본 대부산
백운봉이 너무 멋지다
억새밭...아름답다
저곳은 물고기가 넘었다는 어비산
멀리 드리워진 미세먼지
억새가 갈길을 잡는다
둥근이질풀...곱고 청초하다
용문산 애추
하얀 봉우리는 용문봉
용문봉너머 중원봉
저 아래 용문사가 있고
용문사 은행나무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갈 갈 때 잠시들렀을 때 지팡이를 땅에 꽂은 것이 지금의 은행나무라는데...
접니다4
앞에 뾰족한 폭산(천사봉, 1004미터라서)
폭산뒤로 봉미산
용문산 정상에서 당겨본 용문사
멋진 이경서님
투구꽃
접니다5
장군봉 정상석뒤 안내판에 누군가 써놓은 글
천강유수천강월 (千江有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 (萬里無雲萬里天)

"천 개의 강마다 천 개의 달이 뜨고 구름만 걷히면 청천 하늘 그대로 가득하리라.;

함허 득통대사의 <금강경오가해설의>에 실린 송나라 예장 종경(豫章 宗鏡)의 글이다..ㅎㅎ
함왕봉은 정상석이나 정상목은 없고
이정표에 누군가 써놓은 글이 정상표시..
뒤돌아본 마유산
천연적인 바위절벽을 활용한 성터,
함왕성터(경기도 기념물 제123호)는 용문산 줄기 해발 740m의 험준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때 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함왕성은 함공성(咸公城)·양근성·함씨대왕성이라고도 한다.
 
용문산과 백운봉 사이에 있는 함왕성터는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던 옛 성터로 둘레 8km의 내성은 용문산 중턱에 지금도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내성 둘레는 2㎞에 이르고, 외벽은 천연적인 바위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축성 둘레가 29,058척(약 8,800m)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2,150m 정도만 남아 있으며 북서쪽 성역은 보존이 잘된 편이다. 산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부정형의 다각형 모양이며 산 사면을 따라 축성되어 성 내부의 평탄지가 매우 협소한 편이다.
 
이곳은 함왕외성이다.
멋들어진 백운봉
동양의 마테호른
2년전에 예빈산에서 찍은 백운봉으로 떠오르는 일출
구절초

시/소금빛향기

해마다 구월구일이면 굽이 치는 주름 향기

아홉마디 높이 올라 코끗에 스치는 간지러운 미소

갈길바쁜 걸음 사로잡아 아홉번 사랑노래 부르게 한다

꽃 선녀 옥황상제 아홉 진노
옥비녀 꽂아 단아한 꽃잎 내려 앉아

아홉 혼줄에 지상의 시인농부 만났으니 이 또한 행복이니

천상의 꽃 아홉해를 피고 지고 떠나야할 가을여인 쉴 곳은 소금빛향기
백운봉 오름중에 뒤돌아본 함왕봉과 용문산
주름진 지맥은 설봉과 봉제산
설매재로 오르는 용천리
저기 추읍산도 보이고
오른쪽은 690봉
왼쪽 두 봉우리중 뒤쪽이 두리봉이다
"백운봉에 서서"

시/ 소금빛향기

알프스의 마테호른
용문의 백운봉

산까치 지저귀며
흘러가는 구름 쉬어가라 하고

제우스조차
사나사 종소리에 빛조차 숨기는 곳

달빛을 받아
남한강 물결에 잠기는

이곳에 오르면
이성이 마비되어

쑥부쟁이와 망초꽃을
구별조차 못하는 곳

함왕성에 인걸은 간 곳 없고
찬바람만 불고 있네

나그네 호연지기에
통일노래 불러

그리운 옛 영화에
눈물이 흐른다
용문산을 다시 보고
690봉
헬리포터에서 본 백운봉
백운봉 정상석을 당겨본다
억새와 백운봉
백운봉을 당겨본다
뒤쪽 봉우리가 가야할 두리봉
오늘 억새가 눈길을 끈다
두리봉 ㅋㅋ
왼쪽이 690봉이고 오른쪽 백운봉이 보인다
오작교라 하자 ㅋㅋ
휴양림 도착
"수레국화"

시/소금빛향기(최용철)

남빛 향기
외줄기 머리

은빛 햇쌀
수줍은 미소

연약한 꽃술
잡풀에 밀려

고운 눈빛에
행복 수레 찾아

돌보는 이 없는
슬픈 수레국화

돌아갈 곳
내고향 도나우강
-------------
수레국화는 꽃말은 “행복함” 이며, 자생력이 약해서 잡풀에 밀려 요즘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수레국화는 꽃이 수레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산지는 유럽이고, 독일의 국화이다.
“족두리꽃”

詩/益鹽公(소금빛향기)

감은 듯 뜬 듯
살짝 살짝 서방님을 뵈옵니다.

두 볼에 흐르는 붉은 연지 빛깔
서방님을 향한 소녀의 마음이랍니다.

수줍어 미소띤 족두리에 앉은 나비
소녀를 위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서방님
소녀의 큰절 받아 허리띠에 묶으시고 평생 잊지 마소서.

창포물에 빗긴 머리에 원삼 족두리
다홍치마 연두저고리 사르락 소리 들리 옵니까.

오늘밤 불꺼진 동창에 달님이 엿볼 때
족두리 벗겨 고이 접어 주시어요.

서방님
그런 눈빛으로 소녀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어요.

오늘밤
고통의 신음소리 허공에 울려 서방님을 감싸 오리니
소녀를 안고 나비춤을 추옵소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

풍접초, 또는 족두리꽃은 북한에서는 나비꽃이라고 한다. 꽃잎이 족두리모양을 해서 족두리꽃 이라고 하는데, 보통 6~9월 까지 꽃이 핀다.
옛날 아름다운 꽃님이 궁녀로 들어갈 때, 어머니가 족두리를 만들어 주었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요구에 꽃님이가 중국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향수병으로 죽게 되었다. 어느 날 꽃님이의 고향 뒤산에서 족두리 모양의 꽃이 피어 나비가 앉아 춤을 추었다고 한다.
"설악초"

시/익염공

한 여름에 내린 눈
소복 소복

흰구름 드리워진
녹색바다에 뜬 나룻배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

길가에 핀 하얀풀꽃
잎인지 꽃인지

선녀의 입김으로 피어난
꽃술에 땔 수없는 눈길
ㅡㅡㅡㅡㅡㅡ
설악초는 설악산에서 있어서 설악초가 아니라, 원산지는 미국이고 이름은 snow on the mountain 산위의 눈(설악)이다.

옛날 백발마녀가 인간을 사랑했는데 인간이 변해서 죽게되었는데 그 때 흐르는 피가 하얀색으로 무덤가에 자란 풀잎이 하얀 피색으로 변했다 한다.
바늘꽃(가우라)
하산중에 당겨본 추읍산(주읍산)
사랑초
인동초

시/소금빛향기

고운 모래이불 아래
댕기머리 금화 녹색저고리 은화

가녀린 한줄기 넝쿨
무덤에 피어난 한숨

겨우내 푸른 줄기
살고자 하는 발버둥짓

영혼을 홀리는
붉은 입술

살랑대는 옛 이야기
시린 눈 부여잡는 나그네
--------
인동초는 인동초는 6-7월에 꽃이 피는데 꽃은 한 두 개씩 줄기와 잎자루 사이의 겨드랑이에 달린다. 겨울철에도 말라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따뜻한 지역에서는 푸른 잎을 유지하며 겨울을 지내기 때문에 "겨우살이 넝쿨"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으며, 각 마디에서 두 송이씩의 꽂을 피우는데 이때 먼저 흰 꽃으로 피어났던 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한다. 이처럼 방금 피어난 흰색과 먼저 피어난 노란색의 꽃이 같은 마디에 붙어있기 때문에 금은화(金銀花)라 부른다.

인동초를 금은화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옛날에 금화와 은화라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둘이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언니인 금화가 그만 병에 걸렸고 얼마 후 동생인 은화까지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두 자매는 죽음을 앞두고 부모님께 “우리가 죽으면 약초가 되어 세상에 다시 나와 우리처럼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유언을 했다.
금화와 은화가 죽은 이듬해 무덤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덩굴이 자라났고 덩굴은 해가 갈수록 무성해지더니 여름이 되자 금색과 은색의 꽃들을 예쁘고 사이좋게 피워냈다.
그후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으로 태어난 꽃이라 하여 ‘금은화’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미가 아직도...
풍성한 나락(벼)
하산해서 당겨본 690봉과 백운봉

양평 몽실식당 "버섯도래창"
맛이 끝내줌